Q & A

자주 묻는 질문

질문은 불신앙이 아닙니다. 성경은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베드로전서 3:15)라고 말합니다. 솔직한 질문 8가지에 정직하게 답해 봅니다.

“와서 보라” — 요한복음 1:46

솔직한 질문들

물어봐도 됩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계신데 왜 세상에 고통이 있나요?

기독교가 가장 정직하게 마주하는 질문입니다. 짧은 답은 없지만, 성경이 주는 세 가지 실마리가 있습니다. 첫째, 세상은 지금 원래 설계대로가 아닙니다 — 창세기 3장 이후 죄와 함께 고통과 죽음이 들어왔고, 성경 자체가 이 세상을 “탄식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고통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그 한복판으로 들어오셨습니다 — 십자가는 하나님이 고통을 아신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셋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요한계시록 21:4)가 예고된 결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의 시간에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는 약속이 있습니다. 다 설명되지 않아도, 함께 우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 — 그것이 기독교의 대답입니다.

왜 예수님만이 길인가요? 다른 종교는요?

거의 모든 종교는 “사람이 어떻게 올라갈 것인가”를 가르칩니다 — 수행, 공덕, 계율. 기독교만 방향이 반대입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요한복음 14:6)라는 말이 배타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뒤집어 보면 물에 빠진 사람에게 수영법을 가르치는 대신 직접 뛰어들어 건져낸 유일한 분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종교인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 그분들의 진지함을 존중하되, 죄의 값을 대신 치른 분은 역사상 예수님뿐이라는 것이 기독교의 증언입니다.

과학과 신앙은 충돌하지 않나요?

과학은 “어떻게(How)”를, 성경은 “누가, 왜(Who, Why)”를 다룹니다. 물이 끓는 것을 분자운동으로 설명하는 것과 “차를 마시려고 끓인다”고 설명하는 것이 충돌하지 않는 것처럼요. 실제로 근대 과학의 토대를 놓은 많은 과학자들(뉴턴, 파스칼, 멘델 등)이 신앙인이었고,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가 믿음과 연구를 함께 해 갑니다. 우주가 법칙을 따른다는 사실 자체가 — 법칙을 주신 분을 가리키는 화살표일 수 있습니다.

성경은 결국 사람이 쓴 책 아닌가요?

맞습니다 — 사람이 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 스스로의 증언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베드로후서 1:21)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언어, 성격, 문체를 통해 말씀하셨다는 것이지요. 40여 명이 1,600년에 걸쳐 썼는데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통일성, 수백 년 전 예언의 성취, 사해사본이 보여준 보존의 정확성 — 사람이 쓴 책이라고 하기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1단계 ‘성경, 하나님의 책’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착하게 살면 되지, 왜 꼭 예수님을 믿어야 하나요?

착하게 사는 것은 아름답고, 성경도 선행을 명합니다. 문제는 기준입니다. “착함”이 이웃과의 비교라면 대부분 합격이지만, 성경의 기준은 “하나님의 영광”(로마서 3:23)입니다 — 마음의 동기까지 포함해서요. 시험에 비유하면, 커트라인이 100점 만점에 100점입니다. 그래서 선행은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의 열매가 됩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감사함으로 착하게 사는 것 — 순서가 바뀌면 복음이 아닙니다(에베소서 2:8–9).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별로던데요? (위선자 문제)

아픈 지적이고,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교회가 상처를 준 일들이 실제로 있습니다. 다만 두 가지를 구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첫째, 교회는 완성된 사람들의 전시장이 아니라 치료 중인 환자들의 병원입니다 — 죄인이 모여 있다는 것은 교회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둘째, 제자가 넘어졌다고 스승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베토벤을 서툴게 연주하는 사람을 보고 베토벤을 판단하지 않듯이 — 예수님 자신을 보고 판단해 주세요. 그분에게는 위선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위선을 가장 강하게 꾸짖으신 분입니다.

믿고 싶은데 믿음이 잘 안 생겨요.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시작입니다. 성경에 이런 기도가 나옵니다 —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마가복음 9:24). 하나님은 이 정직한 기도를 받으셨습니다. 믿음은 쥐어짜서 만드는 감정이 아니라, 들으면서 자라는 것입니다(로마서 10:17). 요한복음을 하루 한 장씩 읽으며 “하나님, 계시다면 저를 만나 주세요”라고 기도해 보세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야 29:13)는 약속이 있습니다. 의심을 안고 오는 것도 환영입니다 — “와서 보라”(요한복음 1:46)가 성경의 초대 방식입니다.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어요.

기도의 응답에는 “예” 말고도 “아직”과 “더 좋은 것으로”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모든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지 않는 것이 사랑이듯이요. 예수님도 겟세마네에서 “이 잔을 옮겨 주소서” 기도하셨지만 잔은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 대신 그 십자가로 온 세상이 구원받았습니다. 응답이 없어 보이는 시간에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를 붙들고, 결과를 바꾸는 기도에서 나를 빚는 기도로 자라가는 것 — 그것이 기도의 깊은 층입니다. 그리고 구하는 것 자체는 계속하라고 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마태복음 7:7).

용어 사전

교회에서 자주 듣는 말들

설교나 대화 중에 낯선 단어가 나오면 여기서 찾아보세요. 아는 만큼 들립니다.

구원과 믿음

성령과 기도

예배와 교회 생활

사람을 부르는 말 (직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