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표란
그림자가 먼저, 실체가 나중에
히브리서는 구약의 율법과 제사를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히브리서 10:1)라고 부릅니다. 해가 뜨기 전 긴 그림자가 먼저 드리워지듯,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그분의 윤곽이 구약 전체에 먼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림자를 보면 실체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아래 24가지 예표를 하나씩 펼쳐 보세요 — 시대 순서대로 배열했습니다.
창세기에서
시작부터 그려진 그림 — 8가지
아담 — 오실 자의 표상 (창세기 2–3장)
바울은 아담을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명시합니다(로마서 5:14). 첫 사람 아담의 한 번의 불순종이 모든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왔다면, 마지막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순종은 생명을 가져옵니다 —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린도전서 15:22).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린도전서 15:45). 아담이 잠든 사이 그 옆구리에서 신부 하와가 나왔듯, 십자가에서 창에 찔리신 그리스도의 옆구리로부터 그분의 신부인 교회가 태어났다고 교회는 오래 묵상해 왔습니다.
가죽옷 — 첫 희생 (창세기 3:21)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렸지만, 하나님은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이 생기려면 짐승이 죽어야 합니다. 죄를 가리기 위해 무죄한 생명이 대신 죽는 것 — 성경 역사상 첫 희생이자, 십자가의 첫 그림자입니다.
아벨의 어린양 (창세기 4장)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드렸고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자기 손의 수고(가인의 곡식)가 아니라 피 흘린 제물이 받아들여졌다는 것 —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보여 줍니다.
노아의 방주 — 단 하나의 문 (창세기 6–8장)
심판의 물 가운데 구원의 길은 방주 하나뿐이었고, 문도 하나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요한복음 10:9)라고 하셨습니다. 방주 안에 있는 자는 살고, 밖에 있는 자는 스스로 아무리 헤엄쳐도 살 수 없었습니다.
멜기세덱 — 왕이며 제사장 (창세기 14장)
살렘(평화) 왕이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떡과 포도주를 들고 아브라함을 축복합니다. 왕과 제사장을 겸한 유일한 인물 — 시편 110:4는 메시아를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르는 영원한 제사장”이라 예언하고, 히브리서 7장은 그 실체가 예수님이라고 밝힙니다.
모리아산의 이삭 (창세기 22장)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러 산을 오릅니다. 이삭은 제물이 될 나무를 직접 지고 올라갑니다 —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신 예수님처럼. 그때 아브라함이 한 말이 예언이 됩니다.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22:8). 이삭 대신 숫양이 죽었고, 2천 년 후 같은 지역의 산에서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로마서 8:32).
야곱의 사다리 — 하늘과 땅을 잇는 길 (창세기 28장)
형을 피해 도망치던 야곱이 광야에서 꿈을 꿉니다 —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창세기 28:12). 예수님은 이 장면을 직접 자신에게 적용하십니다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요한복음 1:51). 끊어진 하늘과 땅을 잇는 유일한 다리가 예수님 자신이라는 선언입니다.
요셉 — 버림받은 자가 구원자로 (창세기 37–50장)
형제들에게 미움받아 은을 받고 팔렸고, 누명을 쓰고 고난받았지만, 결국 높아져서 자기를 판 형제들을 기근에서 살리는 자가 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창세기 50:20) —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의 정확한 요약입니다.
출애굽과 광야에서
구원의 원형 — 9가지
모세 — 나와 같은 선지자 (신명기 18:15)
태어나자마자 왕의 학살령에서 살아남았고, 백성을 종살이에서 건져냈으며,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서서 중보한 사람 — 모세의 생애 전체가 예수님의 밑그림입니다. 모세 자신이 예언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신명기 18:15). 베드로는 이 말씀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다고 선포합니다(사도행전 3:22).
유월절 어린양 (출애굽기 12장)
심판의 밤, 흠 없는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만 죽음이 “넘어갔습니다(유월, Passover)”. 집 안 사람의 선함이 아니라 오직 피가 발려 있는가가 생사를 갈랐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외칩니다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 바울은 못 박아 말합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린도전서 5:7).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도 유월절이었습니다.
만나 — 하늘에서 내린 양식 (출애굽기 16장)
광야에서 매일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양식. 예수님은 스스로 그 실체라고 밝히십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한복음 6:51).
반석에서 난 물 (출애굽기 17장)
목말라 죽어가는 백성을 위해 반석이 매를 맞았고, 거기서 생수가 터졌습니다. 바울은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린도전서 10:4)라고 씁니다. 그분이 치심을 당하셨기에 우리에게 생수가 흐릅니다(요한복음 7:37–38).
성막 —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25–40장)
성막은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구조물로 그린 설계도입니다. 문은 하나뿐이고, 들어가자마자 제단(희생)을 지나야 하며, 지성소는 휘장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14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에서 ‘거하다’는 문자적으로 “장막을 치다”라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이 참 성막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숨을 거두시던 순간,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졌습니다(마태복음 27:51) —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대속죄일의 두 염소 (레위기 16장)
일 년에 한 번, 한 염소는 죽어 그 피가 속죄소에 뿌려지고, 다른 염소(아사셀)는 백성의 죄를 머리에 얹은 채 광야로 영원히 보내졌습니다. 죄의 값이 치러지는 것과 죄가 제거되는 것 — 십자가에서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졌습니다.
첫 이삭 한 단 — 초실절 (레위기 23장)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레위기 23:10–11). 안식일 이튿날 — 곧 주일 아침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바로 그 아침, 이 절기가 실체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 15:20). 첫 열매는 뒤따를 추수 전체의 보증 — 그분의 부활은 그분께 속한 모든 사람의 부활을 보증합니다.
놋뱀 — 쳐다보면 사는 (민수기 21장)
불뱀에 물려 죽어가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주신 처방은 이상할 만큼 단순했습니다.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사는 것. 약을 바르는 것도, 공을 세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이 사건을 자신에게 적용하십니다 —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4–15).
도피성 — 달려가면 사는 성 (민수기 35장)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민수기 35:11). 부지중에 사람을 죽인 자가 보수자를 피해 달려가면 사는 성 — 문은 늘 열려 있었고, 그 안에 있는 동안은 안전했습니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인을 이렇게 부릅니다.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브리서 6:18). 예수님이 우리의 도피성입니다.
그 후의 역사에서
왕과 선지자들 속의 그림자 — 7가지
여호수아 — 예수님과 같은 이름 (여호수아서)
‘여호수아’와 ‘예수’는 같은 이름입니다. 히브리어 ‘예호슈아(여호와는 구원이시다)’가 헬라어로 ‘예수스’가 됩니다. 모세(율법)는 백성을 약속의 땅에 들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고, 여호수아가 백성을 인도해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브리서 4:8–9). 참 안식으로 인도하시는 참 여호수아는 예수님이십니다.
라합의 붉은 줄 (여호수아 2장)
여리고가 무너지던 날, 창문에 붉은 줄을 맨 라합의 집만 구원받았습니다 —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여호수아 2:18). 유월절 문설주의 피와 같은 그림입니다. 붉은 표 아래 있는 자는 삽니다. 그리고 이 이방 여인 라합은 다윗의 증조모 룻의 시어머니가 되어, 예수님의 족보에 이름을 올립니다(마태복음 1:5).
룻의 기업 무를 자, 보아스 (룻기)
모든 것을 잃은 이방 여인 룻을, 친족 보아스가 값을 치르고 아내로 맞아 회복시킵니다. 이런 사람을 “고엘(기업 무를 자, 구속자)”이라 부릅니다. 우리와 한 피붙이(사람)가 되셔서 값을 치르고 우리를 자기 신부(교회)로 삼으신 예수님의 그림입니다.
다윗 — 목자이며 왕 (사무엘상·하)
베들레헴의 목자 출신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으나 오랜 고난을 지나 왕이 된 사람. 하나님은 그에게 영원한 왕위를 약속하셨고(사무엘하 7장),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서 그 약속의 성취가 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한복음 10:11).
솔로몬 — 그보다 더 큰 이 (열왕기상)
다윗의 아들, 이름부터 평화(샬롬)에서 온 왕, 그 지혜를 들으러 땅 끝에서 열방이 찾아온 왕 — 솔로몬은 평강의 왕으로 오실 다윗의 자손을 미리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남방 여왕이 …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마태복음 12:42).
성전 — 사흘 만에 일으킬 성전 (열왕기상 6장)
솔로몬이 지은 성전은 하나님이 사람 가운데 거하시고, 죄인이 제사로 하나님을 만나던 곳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한복음 2:19). 요한이 그 뜻을 풀어 줍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한복음 2:21).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참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입니다.
요나 — 사흘 만에 (요나 1–2장)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보내고 나온 요나. 예수님이 직접 해석해 주셨습니다 —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마태복음 12:40). 죽음과 부활의 예고편입니다.
이 걸음의 핵심
아담부터 요나까지 — 그림자들이 공통으로 가리키는 방향이 보이시나요? 죄, 그리고 대신 흘려지는 피입니다. 왜 하필 피여야 했을까요? 다음 걸음에서 복음의 심장부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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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2장(모리아산의 이삭)과 출애굽기 12장(유월절)을 읽어 보세요. 그리고 요한복음 1:29 —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부르는 장면에서 두 그림자가 실체를 만나는 것을 확인해 보세요.
함께 나눌 질문
- 24가지 예표 중 가장 놀라웠던 것은 무엇인가요?
- 그림자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것(죄, 그리고 대신 흘려지는 피)이 왜 그렇게 반복해서 강조될까요?
- 하나님이 수천 년에 걸쳐 한 그림을 그려 오셨다면, 그 정성의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